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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1 [세상]그릇된 의사상과 변화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신화 읽기 열풍이 불었다. 신화 열풍을 일으킨 주역은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였고, 만화와 책처럼 관련된 상품이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이때 필자는 신화 속에서 신기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뿐 아니라 우리나라 단군신화나 일본 신화, 중국 신화에서 수 많은 직업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만 의료인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이 적다는 점이다. 심지어 의료 행위를 하는 인간은 각국의 신화 속에서 등장하지 않는 다. , 의료 행위 또 의료인은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숭고하며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신화 시대를 지나 역사시대 이야기를 보면 의사는 항상 희생적이며 존경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가 아직도 외우는 선서 이름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가장 많이 읽힌 영웅 서사시 속에서 그 영웅들을 치료해주는 화타, 살신성인한 대표 인물로 각인된 슈바이처. 역사에 남거나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의사는 모두 이런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다. , 장기려 박사나 이종욱 WHO 사무총장이 이러한 모습을 현대에도 계승했다. 이렇듯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의사상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한가지 형상을 가리키고 있다. 헌신적이며 희생적이고 자신의 삶 보다는 환자 즉 타인의 삶을 위해 봉사하는 인간상이 바로 의사상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필자도 동의하고 싶다. 의료 행위는 행위 자체가 타인을 위한 희생 이어야 하며, 의학 지식을 가졌다는 점만으로도 의료인은 봉사를 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현대 의료인은 이러한 평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의사 권위와 지위는 점점 하락해 왔고 지금은 의사를 존경하기 보다는 하나의 전문직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평가가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의사 본인에게 있을 것이다. 의술은 곧 인술이라는 말은 책에만 나오는 말이 된지 오래이며 의사들이 가지는 마음가짐은 이와 달라져 있다. 의업도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한 한 수단에 불구하다. 또한 2010년에 실시한 한 대학 신입생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의대를 선택한 이유가 차후 재테크를 위한 자금 마련이라고 응답한 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수입 수단을 대하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의사가 환자를 소홀히 여기면서 진료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물론 이는 의료 수가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의사가 가지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환자 하나 하나를 보살피고 챙겨주기 보다는 이 환자를 보내고 빨리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한 생각이 더 많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형식적인 진료와 검사, 처방으로 이어지게 되고 의료의 질 하락이라는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악순환을 일으켜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다 보니 환자도 이를 느끼게 되고 더 이상 과거 따뜻하고 다정했던 의사-환자 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이로 인해 닥터 쇼핑이라는 말까지 생기고 실제로도 환자들이 의사에게 지속적인 관리를 받기보다는 서로 다른 여러 의사에게 가서 다른 처방을 받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때 다른 처방이나 다른 진단이 나오면 의사에 대한 신뢰는 더욱 저하된다. 또 의사는 떠날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줄어들면서 문제점들이 악순환을 거듭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진행하고 있다.

 위에 제기한 문제점들은 현재 보험 시스템에 의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불합리한 의료수가 때문에 의사는 환자 보다는 환자 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의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불신과 불만이 쌓이면서 서로간에 반목이 생기고 있다. 이런 갈등이 지난 30년간 지속되면서 지금은 의사 집단에 대한 불신 자체가 상당히 커진 상태이며 부조리해 보이는 의료 체계가 정착되고 말았다. 다수를 위해 저렴하지만 질도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체계가 굳어진 상태이다. 이런 실정에서 과거 우리가 가졌던 이상적인 의사 즉,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며 의술이 아닌 인술을 베풀던 착한 의사는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사가 노력하는 방향이 가장 이상적이다. 지금 의사로서 살아가는 사람 또 필자와 같이 의사가 될 의학도가 현 상황에 치우치지 않고 변화 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의료 수가가 문제다, 의사를 믿지 않는 환자가 문제다 라는 말을 하기 전에 잘못한 행동을 돌아보고 무엇이 더욱 환자를 위하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장 아직 학생인 필자도 학교 생활을 하면서 환자 탓을 하고 제도 탓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느냐며 분개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지 않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의사가 되어서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물론 당시 생명과학이 유망하다는 점에서 나온 꿈이기는 하지만, 의공학자 혹은 의생물학자가 되어 환자 한 사람 보다는 더 넓은 세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큰 포부를 품었다. 물론 학교에 다니면서 꿈은 점점 작아지고 지금은 그저 한 학년 한 학년 배움을 이어가는 것 만으로도 숨을 헐떡이며 지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의사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아무런 꿈 없이 학교를 졸업하는 의학도로서 모습도 그리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는 다. 지금부터라도 이전 의사상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스스로를 가꾸어가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필자가 생각하는 미래 필자가 보일 모습은 이런 회귀를 원하는 방향이 되기를 바란다. 고 이종욱 사무총장처럼 높은 곳에서 많은 이들을 개화시키고 변화시키지는 못 하겠지만 필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환자를 더욱 위하는 의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물론 소싯적 바라던 의생물학자로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는 꿈은 접어두겠지만 의사가 바라보는 의사와 환자가 바라보는 의사 그리고 보호자와 제 3자가 바라보는 의사가 모두 옛날처럼 따뜻하고 다정하며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는 의사가 되어 있기를 꿈꾼다.

Posted by 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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